계곡 피서가 물소리와 텐트, 차가운 지하수의 기억이라면 바닷가 피서는 또 다른 풍경으로 남아 있다.
만리포와 경포대, 그리고 어릴 적 한 번 가봤던 해운대.
바다는 계곡보다 넓었고, 파도는 쉬지 않고 움직였다.
아이에게 바다는 수영하는 곳이기도 했지만 모래를 파고, 쌓고, 무너뜨리고, 다시 만드는 거대한 놀이터였다.
계곡에서는 물을 따라 놀았다면, 바닷가에서는 파도와 모래를 상대했다.
바닷가에 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다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금방 모래로 내려앉았다.
손으로 모래를 퍼 올리고,
물을 섞고,
모래성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제법 멀쩡하게 쌓아놓는다.
성벽도 만들고,
물길도 파고,
나름대로 튼튼하게 만든다.
그러다 파도가 한 번 들어오면 순식간에 무너졌다.
바다는 가만히 있는 놀이터가 아니라 계속 움직이는 놀이터였다.
이상하게도 모래성이 무너지면 속상하기보다 다시 만들고 싶었다.
다음에는 파도가 덜 닿는 곳에 쌓고,
물길을 더 깊게 파고,
앞쪽에 모래를 더 높이 쌓았다.
그래도 조금 있으면 파도가 다시 들어왔다.
또 무너졌다.
그러면 다시 쌓았다.
어쩌면 바닷가에서 가장 오래 했던 놀이는 모래성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파도로부터 모래성을 지키는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파도가 들어오는 방향을 보고 모래를 더 쌓고,
물이 빠져나갈 길도 만들었다.
어린아이 나름대로 바다와 계속 협상하고 있었던 셈이다.
한낮의 모래는 발바닥이 뜨거울 정도로 달궈졌다.
그런데 그 뜨거운 모래에 몸을 눕히고 주변 사람이 모래를 덮어주는 놀이도 했다.
몸은 따뜻한 모래에 묻고,
얼굴 쪽에는 우산이나 파라솔로 그늘을 만들어줬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왜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도 바닷가 놀이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지금 기준으로는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 누워 있는 행동은 피부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당시 피서를 떠올리면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장면이다.
계곡에서는 찌개와 카레, 어죽 같은 음식이 떠오른다.
바닷가에서는 자연스럽게 회와 물회 같은 음식이 먼저 생각난다.
강원도 쪽 바닷가에 가면 오징어회와 물회를 먹었던 기억이 있고,
광어나 우럭 같은 생선회도 떠오른다.
속초나 동해안 쪽에서는 아바이순대 같은 음식도 함께 기억에 남아 있다.
어릴 때는 음식의 유래나 이름보다 단순했다.
“바다에 왔으니까 먹는 음식.”
그 정도였다.
여행지에서 먹은 음식은 맛 자체보다 그 장소와 함께 기억에 남았다.
이 기억은 뒤의 **계곡의 어죽과 바닷가의 물회, 오징어회**로도 이어진다.
어릴 적 해운대에 갔던 기억은 한 번 정도다.
정확한 연도나 세세한 일정은 이제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끝없이 사람이 많았던 모습과,
넓게 펼쳐진 바닷가는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처럼 여행사진을 휴대전화에 수백 장씩 남기던 시대도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몇 장면만 머릿속에 사진처럼 남아 있는 것 같다.
사진이 많이 남지 않았던 시절이라 기억이 사진 역할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자외선 차단제를 꼼꼼하게 바르는 문화가 익숙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바닷가에서 놀고 나면 얼굴과 팔,
등까지 빨갛게 타곤 했다.
며칠이 지나면 피부가 얇게 벗겨졌다.
등이나 팔뚝의 피부가 넓게 벗겨질 때는 꼭 뱀이 허물을 벗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들끼리는 그 벗겨지는 피부를 뜯는 것도 괜히 재미있어했다.
지금 생각하면 피부가 햇볕에 심하게 손상됐다는 뜻이니 따라 할 일은 아니다.
그때는 그것조차
“바닷가에 다녀왔다.”
는 흔적처럼 생각했다.
앞의 **내 생의 첫 피서, 계곡에서 며칠을 살았다**에서 떠올린 계곡의 여름과 바다의 여름은 같은 피서이면서도 전혀 달랐다.
계곡에서는 돌과 물고기를 쫓아다녔다.
바닷가에서는 파도와 모래를 상대했다.
계곡물은 차갑고 맑았고,
바닷물은 짜고 넓었다.
계곡에서는 텐트와 버너,
하얀 아코디언 물통이 떠오른다.
바닷가에서는 모래성과 파도,
뜨거운 모래와 햇볕에 탄 피부가 떠오른다.
같은 여름인데 장소가 달라지면 놀이도, 음식도, 기억도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돌아보면 어느 해에 어느 바닷가를 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도 많다.
하지만 장면은 남아 있다.
파도가 들어오자 무너져버린 모래성,
다시 모래를 퍼 올리던 손,
뜨거웠던 모래,
짠 바닷물,
빨갛게 익었던 피부.
그리고 바닷가에서 먹었던 회와 물회.
여행의 일정은 잊어도 이상하게 이런 장면은 오래 남는다.
파도가 무너뜨린 모래성을 다시 쌓던 그 여름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전글
다음글
관련글
|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우리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0) | 2026.10.01 |
|---|---|
| 계곡의 어죽과 바닷가의 물회, 오징어회 (0) | 2026.10.01 |
| 내 생의 첫 피서, 계곡에서 며칠을 살았다 (0) | 2026.10.01 |
| 귀촌·귀농·귀어·귀산촌, 비슷해 보여도 서로 다른 길입니다 (0) | 2026.09.26 |
| 시골은 어디까지가 시골이고, 도시는 어디부터 도시일까? (0) | 202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