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어망 두 개와 족대, 그리고 잊히지 않는 어죽

찢어진 페이지/시골의 추억

by ramson 2026. 10. 1. 07:28

본문

여름이면 자주 가던 계곡이 있었다.

인제 내린천 쪽이었고 백담사까지는 못 가던 근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찾아보면 숙소 이름도 바뀐 것 같고 정확한 장소도 흐릿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계곡 옆 작은 구멍가게와 그곳에서 샀던 어망 두 개는 아직도 또렷하다.

그리고 계곡에 갈 때 족대는 거의 필수품이었다.

그 시절 계곡은 물놀이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하루 종일 무언가를 찾고 기다리는 놀이터였다.


1. 계곡에 가면 족대부터 챙겼다

아이에게 계곡은 물에 들어가 노는 곳이면서 동시에 물고기를 찾아다니는 곳이었다.

돌 밑을 보고, 얕은 물가를 훑고, 물고기가 보이면 족대를 들고 따라갔다.

족대 한쪽을 물속에 대고 다른 사람이 물고기를 몰아주기도 했다.

생각만큼 쉽게 잡히지는 않았다.

눈앞에 분명히 있었는데 족대를 들어 올려보면 아무것도 없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도 또 했다.

잡는 것보다 쫓아다니는 일이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앞서 **내 생의 첫 피서, 계곡에서 며칠을 살았다**에서 떠올린 계곡의 여름도 결국 이런 장면들의 연속이었다.


2. 구멍가게에서 어망 두 개를 샀다

계곡 근처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그곳에서 어망 두 개를 샀던 기억이 난다.

요즘처럼 캠핑용품점이나 대형마트에서 장비를 미리 골라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 구멍가게에 있는 것을 사서 바로 사용했다.

그 작은 가게는 과자와 음료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피서지에서 필요한 물건을 급하게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라진 시골 구멍가게**를 떠올리면 이런 계곡의 가게도 함께 생각난다.

어망 안에는 미끼를 넣었다.

면포 같은 천에 된장과 돼지비계, 생선뼈 같은 것을 넣어 묶었던 기억이 있다.

정확한 배합은 집집마다 달랐겠지만 우리 가족은 대략 그런 식으로 사용했다.


3. 돌을 넣어 물속에 가라앉혔다

어망은 물속에서 떠다니면 안 됐다.

그래서 돌을 함께 넣거나 무게를 잡아 물속 바닥에 두었다.

물이 너무 세지 않으면서 물고기가 다닐 만한 곳을 찾아 넣었다.

그리고 바로 꺼내보는 것이 아니라 한동안 기다렸다.

아이 입장에서는 그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길었다.

“들어갔을까?”

“이제 한번 볼까?”

계속 궁금했다.

어망을 넣는 순간부터 이미 놀이가 시작된 셈이다.


4. 밤이 되면 어망을 확인했다

해가 지고 나면 낮에 넣어둔 어망을 확인하러 갔다.

손전등을 비추며 물가로 내려가 어망을 끌어올렸다.

안에서 뭔가 움직이면 괜히 신이 났다.

많이 잡힌 날도 있었고 기대보다 별것 없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억 속에서는 결과보다 어망을 올리던 순간이 더 또렷하다.

“과연 뭐가 들어 있을까?”

그 궁금증 자체가 놀이였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콘텐츠였던 셈이다 ㅋㅋ


5. 잡은 물고기는 어죽이 됐다

잡은 민물고기는 푹 삶았다.

살과 뼈가 충분히 익으면 걸러내거나 갈아 국물에 넣었다.

여기에 고추장과 된장을 풀고 끓였다.

호박과 두부도 함께 넣었던 기억이 있고, 우리 집에서는 이것들도 꽤 잘게 갈아 넣었던 것 같다.

그렇게 끓이면 물고기 모양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그냥 걸쭉한 찌개나 죽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숟가락 먹으면 특유의 진한 맛이 있었다.

이 어죽의 기억은 **계곡의 어죽과 바닷가의 물회, 오징어회**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6. 어린아이도 이상하게 어죽은 잘 먹었다

아이들이 생선을 싫어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계곡에서 먹는 어죽을 꽤 좋아했다.

아마 생선 모양이 그대로 보이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다.

놀다가 배가 고픈 상태에서 먹어서 더 맛있었을 수도 있다.

밥을 말아 먹었는지, 국수나 수제비를 넣었던 적도 있었는지는 기억이 조금 섞여 있다.

그래도 뜨거운 어죽 한 그릇을 먹던 장면만큼은 남아 있다.

맛보다 먼저 남은 것은 그때의 공기와 냄새였는지도 모른다.


7. 지금 생각하면 계곡 전체가 놀이터였다

족대를 들고 물고기를 쫓고,

어망에 미끼를 넣고,

돌을 넣어 물속에 가라앉히고,

밤이 되면 다시 확인하러 갔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하나하나 준비하고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전혀 번거롭게 느끼지 않았다.

물놀이를 하다가도 어망 생각이 나면 뛰어가서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으면 다시 넣어두면 그만이었다.

계곡에서 하루를 보내는 방법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장난감이 많지 않아도 놀이는 계속 생겨났다.


8. 지금은 규칙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이 이야기는 내가 어릴 때 가족과 계곡에서 놀던 기억이다.

지금은 하천과 어종에 따라 포획 가능한 시기와 크기, 사용할 수 있는 도구 등이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현재 같은 방법으로 물고기를 잡으려면 해당 지역의 규정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옛날에 했던 일이 지금도 그대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기억 속 장면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멍가게에서 샀던 어망 두 개,

물속을 훑던 족대,

된장과 돼지비계 냄새가 배어 있던 미끼,

그리고 마지막에 한 냄비로 끓여졌던 어죽.

지금은 이름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그 계곡에서, 어망 두 개와 족대 하나만 있으면 하루가 짧았다.


이전글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우리는 사람에게 길을 물었다

다음글

아버지와 둘이 떠난 양양, 처음 먹은 회

관련글

계곡의 어죽과 바닷가의 물회, 오징어회

내 생의 첫 피서, 계곡에서 며칠을 살았다

사라진 시골 구멍가게

관련글 더보기